2017년 5월 26일 금요일

진로(進路)

진로(進路)

아들 둘의 진로가 걱정이다.

춥고 배고팠던 시절,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기였던 시절에는 학업성적이 뛰어난 것이 성공과 행복을 확실히 보장해 주었다. 더 좋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확실히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던 시절,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삶의 성공과 행복의 척도가 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 시절의 말미에 살았었다.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 어쩌면 평생 써먹지도 않을 것들, 기억에 두 번 다시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배우고 기억하며 청소년기를 보내는 아들들이 불쌍했었다.
“너희들.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 공부하지 않아도 한 가지만 포기하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요즘 세상이다. 결혼해서 애 낳고 사는 것만 포기하면 된다.”
아들 둘은 모두 내게 독신서약(?)을 했다.

공무원이 되려는 청춘들이 너무나 많다고 한다. 슬픈 일이다.
공무원은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표현할 수 없다.
효율보다는 규칙규범을 따라야 한다. 자신의 생각보다는 관행에 따라야 한다. 답답해도 어쩔 수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지 못하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꽉 막힌 정신의 소유자가 되어가는 것이다.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능력에 상관없이 먼저 공무원 된 사람의 부하직원이 되어야 한다. 꼴통 상급자를 만나면 정말 답이 없다. 이렇게 고생하는 사람을 나는 무척 많이 봤다. 메스컴에서는 그렇게 어렵게 공무원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급자 때문에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다가 결국은 그만두는 사례가 소개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어디 공무원사회 뿐이겠는 가마는 이직이 자유롭지 못하고, 퇴직했을 때 잃을 것이 너무 많은 공무원은 일반 직장인에 비하여 부담이 너무 크다.

하루의 대부분을 단순 반복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데, 다행이도 전문직이라서 돈을 좀 만지는 사람들. 소위 ‘고급 노가다’를 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들의 시간을 그렇게 보내는 대가로 비싼 음식, 비싼 옷, 비싼 집, 비싼 차를 소비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경우가 많지만 과연 행복한지 의심스럽다. 한 번 그 길로 접어들게 되면 쉽사리 다른 삶의 방식을 택하지 못한다. 두려움 때문이다. 현재의 생활방식을 벗어난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그저 계속 소비와 소유로 만족감을 찾으며 더 이상 소비하고 소유할 수 없을 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 열 시간 가까이 컴퓨터 앞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목과 어깨와 허리가 아파오고, 체중이 늘며, 여러 가지 질환으로 고통 받으며 돈을 벌어서 가족을 부양한다. 본인과 가족이 늘상 해오던 그런 소비를 겨우 감당하며 그렇게 나이가 들어간다. 어쩔 수 없다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중얼대면서.

‘자전거 인생’
계속해서 페달을 밟지 않으면 얼마가지 않아서 넘어지고야 마는 자전거 인생들. 페달에서 발을 떼서 땅을 딛고 설 수는 없는 것일까? 앞으로 나아가진 않더라도 최소한 쓰러지지 않는 삶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

<긱 이코노미>라는 책을 읽었다. 세상이 달라졌다.
긱 이코노미는 1920년대 미국 재즈공연장 주변에서 연주자를 필요에 따라 섭외해 단기 공연을 진행했던 '긱(gig)'에서 유래한 용어로 그때그때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견해와 주로 비정규직·임시직을 늘려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염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매경 시사용어사전>

인공지능기술과 로봇기술의 쓰나미가 범지구적으로 밀려들고 있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을 듯한 분위기다. 미래는 더욱 예측불가능하게 되었다.

신자유주의라는 그럴싸했던 사조(思潮)의 결과로 잘 사는 나라는 더욱 더 잘 살게 되었고, 그 나라에서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었으나, 못사는 나라는 더욱 못살게 되었고, 그 나라에서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패턴은 점차 더 굳건해지고 있다.

메스미디어와 인터넷과 디지털혁명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상에 정신을 맡기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면서도 자신은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좀비 아닌 좀비들이 가득 찬 이 세상이 바뀔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많이 벌어서 풍족하게 쓰고 산다는 개념은 이제 접어야 한다. 물질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생활을 배워야 한다. 소유 보다는 공유해야 하는 시대이고, 소비하기 보다는 경험해야 하는 시대이다. 바뀌지 않는다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 갈증 속에서 고통 받다 죽어갈 것이다. 물질적 소비나 소유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체력이 있어야 한다. 건강해야 한다. 진정 소중한 여러 가지 것들이 그러하듯이 건강과 체력도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쇼핑몰에서 구매할 수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힘을 키워야 한다. 이 역시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을 들여 키우고 보전해 나가야 한다. 책을 읽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글을 써 정리하고, 생각에 잠겨야 한다. 우리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인간적인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노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등등. 자신의 삶과 관련된 모든 일에 대하여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키워 갖춰나가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삶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을 직업이 무엇일까?” 혹은 “미래에 각광받을 직업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직업을 갖기 위해 지금부터 열심히 준비할 태세이다. 그런 직업을 갖고서 그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그런 직업을 가져서 얻어지는 수입으로 소비하고 소유하고 향유하고픈 것일까? 그런 직업을 갖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며? 그는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우리가 책을 읽고, 대화와 토론을 하고, 생각에 잠겨야 할 때이다.


댓글 1개:



  1.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 복지부동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직업생활에서만 그러한 태도를 유지할까? 천만의 말씀이다. 가정생활을 비롯한 모든 삶에서 개성을 잃어버리게 되기 십상이다.

    그저 계속 소비와 소유로 만족감을 찾으며 더 이상 소비하고 소유할 수 없을 때까지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 그저 계속 소비와 소유로 만족감을 찾으며 더 이상 소비하고 소유할 수 없을 때까지 자신의 시간을 돈과 바꿔가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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