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6월 8일 목요일

용기

진정 알려고 하는 사람은 드물고, 진정 알게 된 것을 실천까지 하는 사람은 더 드물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관련된 질문들을 한다. 그것이 끝이다. 그의 목적은 질문을 했다는 자신의 모습을 인지하는 것이다. 위안을 삼고 싶은 것이다. 이런 질문을 할 정도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있다는 안도감이나 만족감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운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어떤 운동을 하면 효과적으로 살을 빼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지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내 주변에도, TV 속에도 많다. 질문을 위한 질문을 하는 것이 그들의 감춰진 목적이다. 실천으로 이어질리 없다.

고민에 대하여 상담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고민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을 얻고 있기 때문에 상담자가 제시하는 해결책에는 관심이 없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는다. 오늘도 내일도 고민에 대하여 고민하며 술과 음식 그리고 단 것으로부터 위안을 삼고, 자신과 타인을 학대하며 시간을 보낸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허구한 날 똑같은 고민거리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것은 주변 사람을 학대히는 일임을 본인만 모른다.

행복에 대한 것은 어떨까?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고 싶어서 방법을 찾지만 찾는 시늉만 한다. 사실 절대적인 불행과 절대적인 행복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위해서는 뭔가 불편이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손 안에 쥐어져 있는 행복을 포기하지 않고 다른 행복을 거머쥐려고만 하니 언제까지고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이 결코 내가 원하는 행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놓아 주어야 한다. 그래야 원하는 행복에 가까운 그 어떤 행복을 잡을 기회라도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것들을 부여잡고 있으며, 더 나은 삶을 위해서는 그만큼 놓아야 할 것도 많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서 ‘니버의 기도’는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God, give us grace to accept with serenity the things that cannot be changed,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that should be changed, and the wisdom to distinguish the one from the other.
(주여, 우리에게 우리가 바꿀 수 없는 것을 평온하게 받아들이는 은혜와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진정으로 알고 또한 실천하려는 사람에게는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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